알고리즘이 지운 당신의 취향, 18세기 ‘백과전서파’가 제안하는 지적 큐레이션의 미학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피드 속에 갇혀 내가 진짜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무감각하게 화면을 넘기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2026년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방대한 정보에 노출되어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정교하게 설계한 ‘확증 편향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만의 주관과 지적 체계를 세우고 싶어 하는 분들이 최근 ‘지적 독립’이라는 키워드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런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의 정수이자, 지식의 민주화를 꿈꿨던 ‘백과전서파(Encyclopédistes)’입니다. 디드로와 달랑베르를 필두로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결집해 만든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설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데이터 과잉의 혼란을 이들은 무려 250년 전에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1. 큐레이션의 시초, 백과전서가 현대인에게 주는 영감

오늘날 우리는 유튜브나 SNS의 추천 시스템에 우리 영혼의 안테나를 맡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과전서파는 지식이란 단순한 습득이 아니라 ‘정리하고 배열하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디드로가 주도한 《백과전서》는 당대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하되, 이를 고정된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배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큐레이션(Curation)’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쏟아지는 정보 중 무엇이 가치 있는지 선별하고, 그것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는 힘이죠. 이들은 지식이 소수의 특권층이 아닌 평범한 시민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 2030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나 ‘유료 지식 커뮤니티’의 열풍은 사실상 현대판 백과전서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남이 떠먹여 주는 정보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편집자의 안목을 빌려 나만의 지식 지도를 그리려는 욕구가 투영된 것이죠.

2. ‘나무’가 아닌 ‘숲’을 보게 하는 지식의 지도학

백과전서의 가장 혁신적인 점은 지식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호 참조(Cross-reference)’ 시스템이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찾으면 그와 관련된 다른 학문 분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설계된 것이죠.

  • 지식의 연결성: 물리적 기계의 작동 원리와 철학적 존재론을 연결합니다.
  • 비판적 사고: 종교적 교리 옆에 과학적 사실을 배치하여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만듭니다.
  • 통찰의 확장: 단편적인 정보를 넘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시스템 사고’를 가능케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T자형 인재’의 덕목과 일치합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세로축)를 깊게 파되, 다른 분야와 유연하게 연결(가로축)할 수 있는 시야 말이죠.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던 것만 계속 보여주지만, 백과전서적 사고는 우리가 전혀 몰랐던 낯선 세계로의 연결 통로를 열어줍니다.

3.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 250년 전의 ‘하이테크’ 감성

흥미롭게도 백과전서는 당시의 최첨단 기술과 수공업의 현장을 아주 상세한 도판으로 기록했습니다. 철학자들이 공장에 직접 들어가 노동자들의 숙련된 기술을 관찰하고 이를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2026년 현재, 우리는 AI와 로봇 공학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백과전서파가 기술을 ‘인간을 소외시키는 도구’가 아닌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예술’로 보았듯이, 우리 역시 기술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인문학적 가치와 결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디지털 디톡스’가 무조건적인 기술 거부가 아니라, 기술을 주체적으로 쓰기 위한 ‘멈춤’인 것처럼요. 백과전서파의 눈으로 본다면, 코딩이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또한 인간의 사유를 구현하는 현대의 ‘장인 기술’과 다를 바 없습니다.

4. ‘지적인 취향’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백과전서파는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기존의 낡은 질서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읽고, 무엇에 감동하며, 어떤 정보를 거부하는지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강력한 기준이 됩니다. 명품 가방보다 ‘어떤 가치관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가’가 더 큰 상징성을 갖는 시대입니다.

“지식이란 단순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는 경험이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불편한 지식, 낯선 고전을 탐독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우아한 반항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추천하고 싶어요. 가끔은 유튜브 추천 영상을 끄고, 서점의 가장 구석진 서가에서 전혀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한 권 집어 들어보세요. 그것이 바로 백과전서파가 제안했던 ‘우연한 발견의 기쁨’입니다.

5. 지식의 파편을 모아 나만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법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대판 백과전서적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거창한 백과사전을 집필할 필요는 없습니다.

  1. 나만의 키워드 사전 만들기: 매주 자신이 깊이 몰두한 주제 3가지를 정리하고,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보세요.
  2. 의도적인 ‘노이즈’ 삽입: 관심사와 정반대되는 매체를 하나쯤 구독하여 확증 편향을 깨뜨려 보세요.
  3. 손으로 쓰는 아카이브: 디지털 텍스트는 휘발되기 쉽습니다. 정말 소중한 통찰은 직접 노트에 기록하며 나만의 ‘도판’을 그려보세요.

이러한 과정은 파편화된 정보를 내면화하여 단단한 ‘사유의 근육’으로 만들어 줍니다. 쏟아지는 가짜 뉴스와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 안에 나만의 기준점, 즉 ‘백과전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Summary: 알고리즘 시대, 백과전서파처럼 살기

  • 큐레이션의 힘: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가 아닌, 정보를 선별하고 배치하는 편집자가 되어야 합니다.
  • 연결의 미학: 지식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서로 다른 분야를 상호 참조하며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를 가집니다.
  • 주체적 기술 이해: 기술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도구로서의 기술을 능동적으로 다룹니다.
  • 지적 독립: 나만의 취향과 사유 체계를 갖추는 것이 진정한 자유와 품격을 완성합니다.

알고리즘이 주는 안락한 감옥에서 걸어 나와, 18세기의 철학자들이 꿈꿨던 드넓은 지식의 바다를 항해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여정 끝에 발견하게 될 것은 어쩌면 ‘세상의 모든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진짜 당신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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