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뱅킹 앱에 잠긴 수천만 원의 예금과 평생을 기록한 클라우드 속 사진첩이 주인을 잃은 채 서버 속 미로에 갇히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상속이 부동산이나 현금 같은 ‘물리적 자산’에 국한되었다면, 이제는 비트코인, 게임 아이템, 유료 구독 서비스, 그리고 개인의 SNS 계정까지 포함하는 ‘디지털 유산(Digital Heritage)’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소중한 데이터들이 어떻게 처리될지 법적으로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분들은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디지털 유산, 왜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할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플랫폼들의 서비스 약관을 자세히 읽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글로벌 플랫폼은 계정의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만을 부여합니다. 즉, 사용자가 사망하면 해당 계정은 상속되지 않고 소멸하는 것이 원칙인 경우가 많습니다.
핵심적인 이유는 개인정보 보호법과 통신비밀보호법 때문입니다. 플랫폼 운영사 입장에서는 사망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상속인의 재산권 행사보다 우선한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유족들이 고인의 사진을 찾고 싶어도 계정 비밀번호를 몰라 영영 데이터가 삭제되는 비극이 발생하곤 합니다. 따라서 법률적 공백이 완전히 메워지기 전인 지금, 우리는 스스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사후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1. 금융 자산과 가상자산의 ‘법적 상속’ 프로세스
가장 민감한 부분은 역시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산입니다. 카카오뱅크나 토스 같은 인터넷 은행의 예금, 그리고 업비트나 빗썸에 보관된 가상자산은 원칙적으로 상속의 대상이 됩니다.
-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서비스 활용: 고인의 사망 후 금융감독원의 서비스를 통해 일괄 조회가 가능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는 아직 이 서비스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 거래소별 가이드라인 확인: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는 상속인의 신분증, 가족관계증명서, 사망진단서 등을 제출하면 고인의 자산을 법정 상속인에게 이전해주는 절차를 갖추고 있습니다.
- 프라이빗 월렛(개인 지갑)의 위험성: 만약 거래소가 아닌 개인 하드웨어 지갑에 코인을 보관 중이라면, 복구 구문(Seed Phrase)을 가족에게 전달할 방법을 마련해두지 않는 이상 해당 자산은 영원히 소실됩니다.
2. SNS와 클라우드 데이터: ‘디지털 유산 관리자’ 설정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구글 등 대형 플랫폼들은 사용자 사망 후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자체 기능을 제공합니다. 이를 미리 설정해두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법적 분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주요 플랫폼별 대응 전략
- 구글(Google): ‘휴면 계정 관리자’ 설정을 통해 일정 기간 로그인이 없으면 지정된 연락처로 데이터 다운로드 링크를 보내거나 계정을 삭제하도록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애플(Apple): ‘디지털 유산 프로그램’을 통해 사후 관리자를 지정하면, 관리자가 사망 진단서와 접근 키를 제출해 사진, 메시지, 메모 등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 메타(Meta): 페이스북의 경우 ‘기념 계정’으로 전환하여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남기거나, 영구 삭제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합니다.
Tip: 지금 당장 스마트폰 설정 내 ‘개인정보 보호’ 혹은 ‘계정’ 탭에서 ‘사후 관리자’를 지정하세요. 이것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법적 대비책입니다.
3. 유료 구독 서비스와 자동 결제의 ‘늪’ 탈출하기
최근 상담 사례 중 늘고 있는 것이 사망한 가족의 신용카드에서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OTT, 클라우드, 멤버십 구독료 문제입니다. 유족이 고인의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지 못하면 어떤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구독 서비스는 이용자의 사망과 동시에 계약 해지 사유가 됩니다. 하지만 카드사에 사망 신고를 하기 전까지는 자동 결제가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사용 중인 주요 구독 리스트를 메모해두거나, 가족 공유 요금제를 활용하여 계정 관리 권한을 나누어 갖는 것이 현명합니다.
4. ‘디지털 유언장’ 작성의 법적 효력과 작성법
우리나라 민법상 유언은 엄격한 형식을 갖추어야 법적 효력이 발생합니다. 단순히 카톡으로 남긴 “내 코인은 동생에게 줘라”는 말은 법적 구속력이 약할 수 있습니다.
- 자필 증서 유언: 전문과 날짜, 주소, 성명을 직접 쓰고 날인해야 합니다. 여기에 디지털 자산의 종류와 접근 방법(아이디, 비번 보관 장소 등)을 명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 공정 증서 유언: 공증인을 통해 유언장을 작성하면 사후 분쟁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특히 가치가 큰 디지털 자산(수익형 블로그, 저작권, 고가의 게임 계정 등)이 있다면 공증을 추천합니다.
5. 잊힐 권리와 남겨질 권리의 균형
디지털 유산 상속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지점은 ‘고인이 숨기고 싶어 했던 비밀’까지 상속되느냐는 점입니다. 일기장이나 비공개 SNS 게시물은 민감한 프라이버시 영역입니다.
독일 연방법원은 사후에 페이스북 계정 접속 권한을 유족에게 주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디지털 자산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에 대한 입법이 논의 중입니다. 따라서 ‘남겨야 할 데이터’와 ‘삭제해야 할 데이터’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후에 자동으로 데이터를 파기해주는 디지털 상조 서비스나 솔루션을 활용하는 것도 현대적인 해결법 중 하나입니다.
요약 및 결론
디지털 유산 관리는 단순히 ‘아이디와 비번을 공유하는 것’ 이상의 법률적 준비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내 삶의 디지털 조각들이 가족에게 짐이 아닌 소중한 추억이나 자산으로 남기 위해 아래 세 가지를 기억하세요.
- 첫째, 주요 금융 계좌와 가상자산 거래소 리스트를 정리하고 관리자를 지정하세요.
- 둘째, 글로벌 IT 기업이 제공하는 ‘디지털 유산 관리자’ 기능을 지금 즉시 활성화하세요.
- 셋째, 경제적 가치가 큰 디지털 자산은 반드시 법적 효력을 갖춘 유언장(공증 등)에 포함하세요.
기술은 빛의 속도로 변하지만 법과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벅찬 법입니다. 내 권리를 온전히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혼란에서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법적 공백을 채우는 나만의 선제적인 기록과 설정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